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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The Pop Group이 재결성해서 새앨범을 발매하는데여... 거기에 맞춰서 Sonic Youth의 멤버였던 Thurston Moore와 The Pop Group의 보컬 Mark Stewart의 대담 기사가 나왔네여. 팝그룹 새앨범은 어떨지 반신반의중이지만 대담은 좀 재밌네여... 둘 다 펑크라기보다는 그 직후 세대긴 하지만 현장에서 직접 뛰던 사람들이니 여러가지로 볼만한 말들도 나오고...



"펑크는 웃으면 안 되지."

찰칵. 사진사의 플래쉬가 터진다.

"그렇지, 히피라던가 뭐 그런 것들을 죽이고 있는 중이 아니라면야."

찰칵.

먼저 나온 목소리는 영국 악센트에 West Country 억양이 살짝 묻어나오는 사람이다. 수다스럽고 열정적인 이 남자는 끈질길 정도로 직설적이고 날카로운 유머를 가진 사람이다. 두번째 목소리는 독특한 New England 발음이다: 첫번째 남자만큼이나 말 속에 비꼼이 가득하지만, 더 말수가 적고, 더 느긋하고, 더 여유로운 느낌.

Mark Stewart와 Thurston Moore는 북부 London의 펍에 마주앉아 차를 마시고 있다. 서로 각자의 일과 밴드 - The Pop Group과 Sonic Youth - 에 열렬한 팬인 그들은 각자가 아방가르드 록의 역사에 결정적인 활동을 벌였던 사람들이다. 둘 모두는 여전히 도전적이고 개념적으로 풍부한 음악을 만들고 있다.

The Pop Group의 35년만의 신작이 나오기에 앞서, The Quietus는 대안음악의 두 아바타를 불러모았다 - 직접 대면하여 태평양의 반대쪽에서 벌어졌던 펑크의 발전에 대한 멋진 이해를 보여주기 위해.

사진사는 멈추었고,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는 것 같다. "나는 그저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그녀는 말한다. "그들이 한번이라도 말을 안 하는 순간을 찍기 위해서..."

그런 순간은 절대 없을 것 같다.


Changing the Game Completely

Thurston Moore> 나는 The Pop Group이라는 이름을 영국 음악잡지에서 처음 봤다. 우리는 Gem Spa에서 영국 음악잡지를 자주 훔쳐보곤 했는데, Gem Spa는 St. Mark's Place와 Second Avenue쪽이 갈리는 코너에 있는 곳이었지 - New York Dolls가 첫 번째 앨범 속지에서 사진을 찍은 배경이 바로 Gem Spa다.

Mark Stewart> 와, 완전 죽이는데.

Moore> 그게 바로 Gem Spa였다. 그들은 수입 음악잡지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걸 취급하는 곳은 Manhattan에서도 몇 군데 안 되었는데. 거기엔 NME, Sounds, Melody Maker도 있었다. 그리고 우린 그런 잡지들을 훔쳐보곤 했었다. 수입잡지들 가격이 엄청났는데 우린 돈이 한 푼도 없었거든. 무튼 그래서 내가 The Pop Group이라는 이름을 처음 본 곳이 바로 Gem Spa였다. 스스로를 그런 시시한 이름으로 부르는 밴드라니, 완전 스마트한 펑크라는 생각이 들었고, 굉장히 부조화스러워 보였었다. 스스로를 시시한 이름으로 불러라 - Television 같은 밴드로부터 시작한 것이다. 내가 Television을 처음 봤을때가 기억나는데, 그때는, 와 너네들 스스로를 가전제품 이름으로 부르는구만 싶었는데. Iron Butterfly같은 이름이 아니라.

Stewart> 음, 다리미(iron)는 가전제품이긴 하지.

하지만 Iron Butterfly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누군가가 다리미를 꺼내서 나비의 날개를 하나하나 다리는 모습을 상상하지는 않지 않을까...

Stewart> 나는 상상한다! 그리고 난 Television을 들을때 텔레비전을 생각해 본 적은 없다.

Moore> 음, 그들은 밴드명을 초월했지. 무튼 나는 The Pop Group이라는 이름을 봤을 때 이자들이 대체 뭘지 정말 궁금했었다. 나는 당시 일어나는 어떤 일이라도 너무 궁금했었다. 그때가 77년, 78년 무렵이었는데, 사람들이 세계를 바꿀 만한 곡들을 쏟아내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She Is Beyond Good And Evil' 7인치 싱글을 샀었는데 진짜 엄청나게 좋았었다. 그리고 그들이 New York에 공연을 왔을 때 가서 봤었다.

Stewart> Tier 3에 왔었군? 우리는 Arto Lindsay와 같이 공연했었다.

Moore> 나는 공연이 끝날 무렵 들어갔는데 누가 거기에 수류탄이라도 던져놓은 것 같은 난장판이었다. 수도관이 터진 것 같았는데 어디에나 물이 잔뜩 묻어있었거든. Gareth Sager(The Pop Group의 멤버)는 무대 위에 누워서, 색소폰을 옆에다 버려두고 있었다. 나는 그걸 보고는, 그러니까, ㅅㅂ 도대체 이게 뭔 난리야?

Stewart> [엄청나게 웃어대며] 언제나 그래왔지. Gareth는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그는 London 어딘가에서 아직도 누워 있을 거다.

Moore> The Pop Group은 당시 New York의 어떤 밴드와도 다른 밴드였다.

Stewart> 우리는 사실 New York 씬에서 영향을 받았었다. Television의 'Little Johnny Jewel'을 처음 들었을 때, 그때는 마치 신이 직접 현신하는 순간 같았다.

Moore> 'Little Johnny Jewel'은 New York 씬에서 처음 나온 7인치 싱글들 중 하나였다. 그런 음반을 듣는 것은 특별한 일이었다. 그저 연주가 정말 절약적이었다. 진짜 미니멀했고, 정말 황량했었다. 싱글 제작비는 명백히 한계까지 절감된 염가였다. 그리고 그 싱글곡은 상궤를 벗어나지 않았다는 점에서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Little Johnny Jewel'은 당시의 NY 거리에서 언제나 들을수 있었던 곡들 중 하나에 불과했다. 진짜 날것 느낌에 조금은 충격적인. 그리고 Television이 짧은 헤어스타일을 고수한 것 또한 완전 급진적인 태도였다. 당시에 정상적인 정신상태로 음악을 하는 사람들은 절대 무대 위에서 짧은 헤어스타일로 록을 연주하지 않았았다. 그런 일들은 불가능한것이나 다름없었다.


Stewart> 영국도 마찬가지였다. Bristol에서 청소년기를 보내면서, 나는 토요일 밤마다 헤비한 funk 음악을 들으며 춤추러 다녔다. 우리는 50년대의 후줄근한 옷을 입고 London에 가서 쇼핑을 하러 다녔고, Malcom McLaren(Sex Pistols의 매니저)의 옷가게, Let It Rock, Johnson & Johnson's 등등에 들어가서는 후에 펑크스타일이라고 불려질 느낌으로 옷을 사입었지만, funk 음악에 맞춰 춤을 추었다. Sounds 잡지에서 Sex Pistols를 처음 보았을 때 그들은 우리들이 funk 클럽에 춤추러 갈 때 입는 스타일과 정확히 같은, 특이한 모헤어 점퍼에 분홍색의 뾰족한 구두를 걸치고 있었다.

Moore> 내가 New York에 처음 발을 들였을 때가 19살이었는데 주변 사람들 중 내가 가장 어렸었다. 주변에서 활동하던 다른 뮤지션들은 모두 대학을 마치고 나오는 사람들이었다. The Ramones는 20대로 들어서고 있었다. Patti Smith가 Horses를 발매했을 때 그녀는 30살이었다. 조금 나이가 있는 세대들이었다.

Stewart> Patti는 우리를 많이 도와주었다. 우리가 아직 학교를 다닐 무렵, 우리는 Bristol의 청년 클럽에서 활동하는 것에 압박감을 느끼기 시작하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일단 우리는 연주를 할 줄 몰랐다. The Clash의 베이시스트였던 Paul Simonon이 운지 표시용 Letraset 스티커가 붙은 베이스를 들고 와서는 연주하는 것을 보여주었고, 우리는 열광해서 악기를 들고는 무지하게 빨리 쳐댔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기자들이 방문했다. Richard Williams(당시 Melody Maker의 편집자)가 Bristol에 와서는 우리가 이 작은 클럽에서 하는 짓들을 보았고, 그는 우리가 무슨 Albert Ayler(아방가르드 재즈 뮤지션)라도 된다고 생각했었다. 그는 우리가 다분히 의도적인 실험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는 우리가 연주할 줄 아예 모른다는 것을 몰랐다. 그러다보니 어쩌다가 Patti Smith가 우리를 찾아냈다. 그녀는 영국 투어를 돌고 있었고 우리는 그녀의 공연을 서포트하러 다녔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Pere Ubu와 약간의 작업을 같이 했다. 나는 그 무렵 대학입학용 진급시헙을 통과해야만 했었고 머리가 지끈거렸었다. "햄릿"에 대해 50페이지짜리 에세이를 썼었는데 완전 Gregory Corso(비트 시인)같은 글이었다. 내가 써 온 글들 중 가장 멋진 녀석이었다. 나는 David Thomas와 Pere Ubu와 함께 4일을 Paris의 클럽에서 있었고 그자들은 우리에게 임금지불을 하지 않았다. What the fuck?

Moore> 나는 영국의 밴드들 - The Pistols나 The Slits - 이 나랑 같은 나이대면서도 밴드를 시작하고 있다는 것을 전해들었다. 나는 너무나도 영국에 가고 싶었고, 나와 같은 나이대의 사람들이 밴드를 시작하는 곳에 있고 싶었다.

Stewart> 나는 영국보다 New York이 더 고향같게 느껴졌다. 또한 내게 New York은 라디오 스테이션이기도 했다. 우리는 한밤중에 일어나 휴대용 라디오를 틀고는 WBLS(New York 라디오방송)을 듣고는 했다. 우리가 들었던 방송은 초창기의 Red Alert(WBLS의 DJ) 쇼였다. 그 후 우리는 항상 똑같은 시간에 맞춰서 Red Alert 쇼를 듣기 시작했다. 그리고 카세트들을 Bristol로 가져왔다. 당시 내 친구였던, 지금은 Massive Attack에서 3D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카세트 테잎에 작은 그래피티 낙서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로 그 때, 모여서 파일 드라이버같은 비트를 듣던 그 때가 Bristol 힙합 씬이 시작되던 순간이었다. 나는 요즘 영국의 일부 사람들, 그러니까 Cafe OTO(London의 유명한 실험음악 카페)스러운 실험음악과 댄스음악을 분리하려고 하는 사람들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나는 Tom Moulton의 12'' 들에서 더 많은 실험을 발견하곤 하는데...

Moore> 힙합은 음악사에서 가장 성공적인 실험음악이다. Public Enemy와 함께 녹음했던 때가 기억나는데 - 

Stewart> 당신들이 Public Enemy랑 같이 녹음했다고?

Moore> 음, 우리는 같은 스튜디오에 있었다. 그때 우리는 Goo를 만들고 있었고 그들은 It Takes A Nation Of Millions를 만들고 있었는데...

Stewart> 죽이는데. 존경스럽다. [하이파이브!]

Moore> 우리는 같은 공간에 있었고 매일 밤마다 엔지니어들이 보드 작동법을 알아내려고 노력하는 동안 같이 TV를 보고 야식을 먹으면서 어울렸다. 우리는 같은 시간에 스튜디오를 사용했고 해서 Public Enemy와 정말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70년대 후반에 New York으로 올라온 Sonic Youth 멤버들은, 상업 음악은 너무 진부하고 거품만 가득한데다가 돈에만 너무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상업적 성공을 목표로 하는 것은 쿨하지 못한 일이라는 태도를 갖고 있었다. 우리는 모두 가난함에 어떤 종류의 영광이 있다고 생각했고 유명해지는 것이나 돈을 버는 것으로부터 스스로를 격리시키려고 했었다.

Stewart> 더러운 일이지.

Moore> 그렇지. 우리는 스스로 발견해내고 구축한 것에 만족했었다. 반면 힙합은 자체가 큰 돈을 버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었다. 돈을 버는 것 뿐만이 아니라 그것을 한껏 자랑하는것도 목표였다. 삐까뻔쩍한 금색 체인목걸이를 하는 것. 우리와 힙합간에는 거대한 문화적 간극이 있었다. 그리고 우리와 Public Enemy는 이에 대해 토론을 했었다. 아프리칸-아메리칸 힙합은 권리를 완전히 박탈당한 문화에서 자라나온 것이기에 그들은 전리품을 마음껏 노획했다. 하지만 펑크는 상대적으로 더 상류층의 사람들로부터 나온 것이었다... 

Stewart> 영국에서는 아니었다. John Lydon(Johhny Rotten)같은 사람을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Bristol에서, 특별히 내가 속했던 세대의 펑크에서 흥미로운 점은 펑크가 길거리 양아치들을 달랬다는 것이다. 내 친구들은 모두 미친놈들이었다. 그놈들은 아직도 미친놈들이다.

Moore> 그 점이 바로 재미있는 부분인데, 영국에서는 음악 씬의 참가자들 대부분이 어렸을 적부터 같이 자라 온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New York은 정말로 이례적인 곳이었다. 그곳에 있던 사람들의 대부분은 토박이가 아니라 다른 고장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정말로 New York에서 토착적으로 발생했다고 말할 수 있는 음악은 힙합뿐이다. 우리같은 밴드들은 전부 바깥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펑크밴드들 중 몇 안되는 자들만이 New York의 거리에서 자라 온 자들이었다. Patti Smith는 New Jersey에서 왔고 Tome Verlaine(in Television)도 마찬가지였다. Richard Hell(in Television)은 Kentucky 출신이었다. 그들은 예술의 세상이 있는 곳을 찾아 New York으로 온 것이었다 - 하지만 New York은 70년대에 이미 경제적으로 말라버렸다. 거기에는 돈이 없었다. 그저 마약거래와 범죄들 뿐이었다. 누구라도 마약 중독자가 되려고 New York에 가진 않을 것이다.

Stewart> 아방가르드 마약 중독자라.

Moore> New York에는 아방가르드 마약 중독자들이 있었긴 했다...

Stewart> 너도 언젠가는 그렇게 될 수 있다.

Moore> 나는 한번도 마약을 해 본 적이 없어서 그들을 이해할 수 없다...

Stewart> 하지만 예술은 마약이 될 수 있지, 그렇지 않나?

Moore> 오, 물론이지.


Leaping Into The Audience

Moore> 이 모든 음악과 예술은 정말로 체제전복적이고 반동분자적이다 - 도대체 무엇이 우리를 이런 것으로 이끄는 것일까? 심지어 평안한 가족에서 자라나온 사람들도 이런 것에 이끌린다. 그런 예술의 정치적인 성향때문일까? 그런 예술이 질문을 던져대기 때문일까? 나는 항상 이것이 궁금했었다. 왜냐면 나는 어린시절 집에서 자랄 때 트라우마가 될 만한 일은 겪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도대체 어째서 나는 무대에 서서 털이 무성한 가슴팍을 보여주며 마이크를 흔드는 Robert Plant(in Led Zeppelin)보다, 은색 스프레이를 온몸에 뿌리고 관객석에 뛰쳐들어가는 Iggy Pop(in Stooges)에게 더 끌리는 것일까? 그렇다고 내가 Led Zeppelin을 좋아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을 싫어하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처럼 되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온몸에 은색 스프레이를 뿌려대고 관객석으로 다이빙하는 남자처럼 되고 싶었다.

Stewart> 그게 바로 반항심이지, 그렇지 않나? 나는 아직도 그런 감정을 느끼고 있다. 펑크는 바로 내가 관객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그저 관객들의 하인 같은 것이다. 사람들은 정치적인 가사에 대해 얘기하곤 하지만 내게 정치는 그저 인간 삶의 한 부분일 뿐이다. 나는 그저 대화를 부추길 뿐이다. 우리는 모두가 한번뿐인 인생을 살기에, 모두에겐 다음 세대에게 어떤 영향을 줄 만한 일을 할 권리가 있다. 만약 프랑스 시인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열어젖히지 않았다면...

Moore> 만약 Paul Verlaine(프랑스 시인)이 없었다면 Tom Verlaine도 없었다. 내가 The Pop Group이 "Nixon and Kissinger should be tried for war crimes" ('For How Much Longer Do We Tolerate Mass Murder?' 수록곡)을 부르는 것을 처음 들었을 때, 그런 가사는 Pink Floyd 같은 밴드들에게서는 들을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그 가사는 나를 하루종일 생각에 잠기게 만들었다. 'Nixon과 Kissinger는 전쟁범죄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라. 이런 말은 좌파적 자유주의 사상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지만, 음악을 통해 말해짐으로써 긴급함과 힘, 감정을 부여받게 된다. 심리적으로 더 큰 효과를 갖게 되는 것이다. 음악은 공유된 논의로써 직접적인 행동의 효과를 낳게 된다.

Stewart> 나는 Beirut에서 진짜 제대로 폭파된 지역에서 Massive Attack을 듣던 꼬마와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음악은 이런 방식으로 퍼져나간다. 멋진 일이다. 이는 마치 해독제와 같다. 우리가 The Pop Group을 다시 결성한 이유들 중 하나는 바로 그거였다. 나는 우리가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채널을 쓰는 것이 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상품들의 중심에서 폭발하는 폭탄이 되는 것. 우리는 정말로 팝 그룹이 되어서 텔레비전 쇼에 나와 사회의 좀비화에 대항할 해독제로써 작용하고 싶었다. 내 경우를 생각해 보자면, 만약 New York Dolls가 Mercury 레이블에 소속되지 못했다면 그래서 The Old Grey Whistle Test 쇼에 나오지 못해서 내가 그들을 못 보았다면 - 만약에 John Lydon이 그들을 못 봤다면, Mick Jones(in Clash)가 그들을 못 봤다면 - 나는 어딘가의 공장에서 사무원 나부랭이나 되었을 것이다. 내게 있어 누군가들의 눈을 이끈다는 것은 정말로 중요하다 - 그리고 이런 주목은 맹렬해야 한다. 오늘날 맹렬한 주목을 추구하는 자들은 강탈자들, Nigel Farage(영국 정치인)같은 사람들밖에 없다 - 그리고 음악 산업계에는 그런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이 있다.

Moore> 우리가 펑크를 통해 만든 것은 스스로의 미디어를 가지라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펑크록에 있어서 가장 성공적이었던 것이다. 상업적 문화에 대응하는 반문화를 만드는 것. 지금의 우리는 이것들을 전부 갖고 있다. 어떤 면에서는, 뮤지션이나 예술가가 막대한 부를 벌어내려는 야망을 갖는다는 것은 실제로 뮤지션이나 예술가가 된다는 것의 의미를 뒤튼 것이다. 이 밴드들은 모여서 밴드를 시작하는 것조차 원하지 않고, 그저 브랜드를 시작하고 싶어한다. 그게 바로 가치와 돈이 가는 곳이다. 음악이나 예술을 한다는 것에 있어서 성공이라는 것은 돈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그건 그렇게 될 수가 없다.

Stewart> 그렇지, 하지만 가끔은 누군가들의 주의를 끌어야 한다.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우리가 하는 일을 들려주고 싶다면 그게 특정한 기관과 연관을 맺을 이유가 된다.

Moore> 그것도 하나의 방법이지, 하지만 나는 부를 추구하는 것에 대해 말한 것이었다...


The Look Is Everything

Moore> 우리가 New York에서 입고 다닌 스타일들은 순전히 경제상황에 의한 것이었다. 당시 옷가게들에 직접 가 볼 수도 있다. 가장 유명한 곳은 Canal Jeans 였다.

Stewart> Canal Street에 있는.

Moore> 원래는 Canal Street에 있었는데 Broadway로 옮겨갔다. 어쨌든 그 가게는 재고물품 방출을 하곤 했고 그것들은 99센트짜리들이었으며 그들이 가진 이상한 물품들이 전부 거기에 있었다. 라펠드 재킷, 얄팍한 넥타이, 칼라가 작은 버튼다운 셔츠, 스트레이트 팬츠 같은 늙은이들의 옷들이 있었지. 그것들이 우리가 가격을 지불할 수 있는 유일한 옷들이었다. 그런걸 입으면 50년대의 괴짜 대학생같은 꼴이 됐다. 그런 꼴을 하고싶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돈이 없어서 그런 옷들밖에 못 샀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꼴이 Lower East Side, East Village 스타일이 되었다. 음악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살 수 있는 유일한 음반 종류는 - 

Stewart> 컷-아웃(펀치로 뚫리거나 잘린, 반품 불가의 염가 음반들. 주로 악성재고로 떨이처리되는 것들이었다)들이었겠지.

Moore> 그렇다. 컷-아웃들. 그리고 컷-아웃들이 뭐였나? 그것들은 레이블이 도저히 팔 수가 없는 것들이었다. 그러니까: Can의 Ege Bamvasi 같은 것들. 헐값에 팔아치우려는 것들.

Stewart> 나는 Stooges의 Fun House를 컷-아웃 버전으로 샀었다. 많은 Tamla Motown 레이블 음반들도 컷-아웃으로 샀었지. 

Moore> 당시에는, 이게 뭐야? Amon Düül? 그리고는 그걸 사서 집에 돌아와 듣곤 하는 것이다. Captain Beefheart, Spotlight Kid? 완전 헐값이었다. 정말 멋진 음반들인데. 그러니까 우리들의 형들이나 형 친구들이 Allman Brothers, Rick Wakeman 같은 것들을 듣고 있을때, 우리는 그런 이상한 컷-아웃들을 들었고 그것들이 우리를 만들었으며 그래서 우리는 Ramones를 들었던 것이다. 왜냐면 Ramones는 우리가 듣던 컷-아웃들과 같은 것에 대해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Stooges 음반들 같은 것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말하는 첫 밴드였다. 정말 급진적이었지. Stooges 음반들에서 영향을 받은 밴드가 있다고? 그러니까, 도대체 어떤 놈들이야? 사람들이 우리 밴드가 쿨하다고 말하는 것을 듣곤 하는데 - 나는 쿨하지 않았다. 내가 마지막으로 한 것은, 쿨했었다. 마치 Television이 짧은 머리로 공연을 한 것처럼...

Stewart> 내게 있어서 스타일은 모든 것이다. 이 말은 언젠가 다른 사람에게도 한 적이 있는데: Alvin Stardust가 텔레비전에 나온 것을 처음 봤을때, 나는 일을 때려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 나도 좆같은 공장에서 일하는 것을 때려치고 가죽장갑을 끼고 무대에 올라 뭔가를 가리킬 수 있는 것이다. 그저 내 머리를 뒤로 전부 넘기고 뭔가를 가리키는 것이다 - 나는 여전히 그러고 있다. 옷은 모든 것이다. 내게 있어서 옷과 스타일은 모든 것이다. 밴드를 보러가거나 누군가와 술집에서 잡담을 할 때에도. 그것은 정말 중요하다.

하지만 그거야말로 쿨하게 보이려는 것 아닌가?

Stewart> 당신이 그걸 어떻게 알지? Mr Primark(저렴한 가격에 옷을 파는 영국 브랜드)!

[그리고, Mark Stewart가 내 옷이 구리다고 웃으면서 놀려댈 때, 나는 슬그머니 거리로 도망쳐 나와, 두 명의 펑크 복서들이 잉글리쉬 블랙퍼스트 잔을 들고 쉴새없이 떠들게 내버려 두었다...]

Moore> 의자들이 부러진 곳이 적절한 술집이지. 나는 '적절하다'라는 단어를 어떻게 써야할 지 항상 궁금했는데, '적절하다'는 건 사회적으로 옳다는 것 같다는 뜻을 풍기기 때문이었다.

Stewart> '적절한 영어' 같이.

Moore> 어떤 기자가 최근에 나한테 말했었는데 - "이제 그가 적절한 밴드를 만든 걸 보니 좋군요." 그때 나는, "뭐라고요?"

Stewart> 오우, 적어도 적절한 직업은 갖게 되겠군!

Moore> 그건 잘 관리되었다는 뜻 같다. 적절하다는 것은 펑크와는 상반된 것이다. 적절한 펑크라는 말보다 더 모순적인 것이 있을까? '나와서는 적절한 공연을 한다'라...

Stewart> [웃음이 터진 채로] 적절한 공연이라!

Moore> 내가 바라는 대로 모든 것이 진행된 것 같다. 자 이제 집으로 기어들어가서 만족하면 되겠다. 진짜 그러고 싶지 않군...

http://youtu.be/bAL4nhHDKz0


  • 영준비 2015.02.08 22:20
    으 이 양질의 번역은!!!! ㅠㅠ 갓동니뮤
  • 박그대 2015.02.08 22:28
    에디토리얼로 갑시다
  • 영준비 2015.02.08 22:32
    일단 달릴 리플 다 달리고 ㅋㅋ
  • 한희정 2015.02.08 22:51
    잘 읽었습니다
  • 한희정 2015.02.08 22:52
    근데 전 더스턴 무어 시름요.. 망할 왜 바람은 피워가지고 ㅜ
  • lyricmind 2015.09.11 06:11
    네이버에서 팝그룹을 검색하니 72만원짜리 티셔츠가 나오네요 하허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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