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6.19 00:03

falco do mclusky

조회 수 159 추천 수 0 댓글 1
mclusky는 약 10년간 존재했었던 웨일스의 노이즈 록 밴드입니다... 아시는 분들은 다들 아시겠지만, 시끄럽고, 쓰레기같고, 심성이 꼬이다 못해 변태 수준이 되어버렸다 할 수 있는, 아주 훌륭한 노이즈 록 밴드입니다. 몇 년 전에 보컬/기타 Falco가 자선 목적으로 mclusky곡을 다시 연주하는 일들이 있었는데, 그 때문에 재결성 루머가 돌자 Falco가 자신의 입장을 정리해서 DiS에 올렸었습니다. 이 글이야말로 mclusky에 대해서 가장 잘 보여주는 글인 것 같아 허접하게나마 옮겨봅니다... 2000년대 초반 최고의 노이즈 록 밴드를 기리며...

"These guys are total shitheads and they know it. That's what I like about noise rock."
- NoahIsCool, rateyourmusic

=======================================================================

http://drownedinsound.com/in_depth/4148234-reformations-eh-falco-on-the-slight-return-of-mclusky-and-being-a-lifer


https://youtu.be/96O8SM20y7U

들어가기에 앞서, 일종의 도입부를, 일종의 개괄을 써 봐야겠다. 이 글/기사/'계속해서 의미 있는 사람이고자 하는 절망적인 시도'를 막 쓰기 시작했을 때의 의도를 말하자면, 뭔가에 살짝 놀라서 의심을 품고 있는 사람처럼 글을 쓰려는 것,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런 사람처럼 쓰는 사람이고 싶었다는 게 맞겠다. 이 글을 읽다가 혹시라도 저자(그러니까 바로 나)가 스스로를 잔뜩 부풀은 증오와 쓰디쓴 추억에 처넣고는 자신을 비극적으로 비하하면서 일화의 형식을 빌려 원한을 풀어내려고 한다는 느낌을 받는다면, 당신은 틀렸다. 나는 그딴 생각은 목욕할 때나 한다. 이 글은 전혀 다른 것이다. 이 글은 밴드를 재결성하려는 (아니면 최소한 재결성에 가깝기는 한 무언가를 하려는) 것에 대한 글이다. 만약 글에서 부정적인 느낌이 묻어나온다고 느낀다면, 2가지 사실을 염두에 두어주길 바란다, 하나는 이 글을 쓰는 사람이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나라는 것이고, 또한 나라는 인간은 선천적으로 부정적인 느낌을 여기저기 묻히고 다니는 취향을 갖고 있다는 것 말이다. 두 번째는, 좆까라(↓1).

미리 경고를 해 주어야만 하겠지, 나는 모든 곡과 앨범 이름을 따옴표 안에 넣었다. 꽤나 힘든 일이었다.


https://youtu.be/UKi_WiPm6zs

나는 mclusky라는 이름의 밴드에 있었다. 상당히 좋은 밴드였었다. 우리는 몇 년간 활동했고 앨범을 3개 만들었으며, 그 중 2, 3번째 앨범은 돌이켜 볼 때 자랑스럽게 생각할 만한 좋은 앨범이었다. 2번째였던 'mclusky do dallas'는 우리의 최고작이라고들 한다. 독일인들은 이 앨범을 좋아했는데 (그리고 독일인들에 대해서는 따로 말을 더 하진 않겠다 - 그들 대부분은(↓2) 3번째 앨범을 싫어했고 따라서 나/우리의 다음 밴드인 Future of the Left에겐 무관심으로 대응했다) 왜냐면 그 앨범은 기본적으로 Pixies를 Motorhead 버전으로 연주한 것이나 다름없는 앨범이었기 때문이다. 프랑스인들은 이 앨범을 싫어했는데 (그리고 프랑스인들에 대해서도 따로 말을 더 하진 않겠다 - 그들 대부분은(↓3) 3번째 앨범을 좋아했고 따라서 Future of the Left에 대해 진심어린 것처럼 보이는 관심을 보였다) 왜냐면 독일인들과 같은 바로 그 이유에서였다. 네덜란드인들은 앨범이 있다는 것 자체를 몰랐다((↓2)와 (↓3)을 보라). 호주인들은 앨범을 좆나게 좋아했었다. 호주인들은 우리를 좆같은 개년들(역주: cunts)이라고 불렀었는데, 뭐 그럭저럭 괜찮았던 것이, 좆같은 개년들이라는 것이 알고 보니 사실 아주 멋진 것이었기 때문이었다(↓4). 미국인들은 몸은 가만히 서 있었지만 입으로는 앨범이 좋다고 이빨을 털어대면서 공연장에선 우리랑 가장 잘 어울려 놀았었는데, 아마도 우리 영어 억양이 미국인들에게는 좀 미친놈처럼 들리는 바람에 우리를 실제보다(실제로도 꽤나 재미있기는 했다) 18% 정도 더 재미있는 놈들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았다. 우리는 (공연을 하느라) 일본 빼고 세계를 돌아다녔다. 앨범은 별로 못 팔았지만, 애초에 기대하지도 않았었다. 하지만, 나는 진심으로 믿건대, 만약 우리가 음악관련 잡지에 올라갔었다면, 당시엔 그리고 아직까지도 어느 정도는 중요한(↓5) 음악 주간지를 통해 관객 수를 어느 정도는 보장받는 미국 밴드였었다면, 아마 4~5배는 앨범을 더 팔았을 거고, 좀 더 큰 공연을 했겠지만, 흠, 정말로, 어떤 새끼가 이런 것에 조금이라도 신경쓴다는 말인가? 바로 나. 이 남자. 나는 신경쓴다. 이젠 그 때 만큼은 신경쓰지 않을 뿐.

최근에 추정하기로는 37% 정도 덜 신경쓰고 있다.


https://youtu.be/zTdKhOIUWfQ

mclusky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밴드는 아니었다. 누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밴드지? Counting Crows? 우리는 가난했다. 찢어질듯이 가난했다. 그 저주받은, 거의-아마도-성공하지-않을까-레벨에 있는 수많은 밴드들처럼, 우리는 괜찮은 밴드였지만 돈은 없었고, 희망과 경험, 그리고 허구헌날 샌드위치만 먹는 생활을 살아갔다(↓6). 고전적인 모델을 따라 투어를 너무 열심히 도는 바람에 정규 직장을 유지할 수 없었고, 다른 일을 하기에는 돈을 너무 조금밖에 못 벌었다. 멤버들 중 한명은 높은 곳으로 올라서기 전의 빈털터리 pre-Libertine 처럼 '우연하게' 돈을 조금 횡령하게 되었고 다른 멤버들이 이 사실을 모를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뭐 이 일 빼고는 딱히 특별한 사건 없이 천천히, 몇 년이라는 세월이 지나가며 커져갔던 감정, 필연적으로 죽을 수 밖에 없는 것을 바라보며 느끼는 느리고 조용한 슬픔을 느끼며, 우리는 끝나갔다. 밴드의 오리지널 드러머와 (여기서 이름을 밝히고 싶지는 않다. 이름을 밝힌다면 그녀석이 즐거워할 게 뻔하니까(↓7)) 함께한 마지막 미국 투어에서, 나는 투어 멤버들 사이에 생겨난 두 파벌 사이를 방황했었는데, 하나는 고문에 가까운 스카톨로지 브로맨스였고 다른 하나는 밴드에서 나 혼자서만 만든 더 이상한 이성애자 패거리였으며, 방황 끝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밴에서 자거나 복도에서 자는 일밖에 없게 되었었다. 공연에는 거의 아무도 오지 않았다. 좆같은 Trent Reznor까지는 왔었다(↓8). 운 좋게도이 투어에서 Jack (Egglestone)을 만날 수 있었으며, 우리의 (그리고 나중에 Future of the Left의) 새 드러머가 되었다. Jack은 아마도 록 커뮤니티에서는 (당신이 인조 트럼펫 노이즈나 공공장소에서 배를 까놓고 긁는 행위를 특별히 혐오하는 게 아니라면) 가장 다정하고 좋은 사람이었으며, 해서 상황이 좀 풀리게 되었다. 우리는 앨범 하나를 더 만들었고, 비록 앨범 자체의 소리는 전혀 그렇지 않았지만, 재미있었다.

그리고 끝나버렸다. 물론 계기가 될 만한 사건은 있었지만 중요하지는 않았다 - 중요하다고 쳐 봤자 살인마가 하품하는 도중에 내뱉은 한숨 정도의 중요함밖에는 없었다. 그 계기라는 걸 당신들한테 공개하고 싶진 않은데, 그 이유는 (a) 내가 상처를 주는 말들을 던지며 정신나간데다가 특정한 기억에 집착하는 좆같은 원숭이새끼처럼 굴게 된다면 그 어떤 누군가는 거기에 대해 응답할 권리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며 또한 (b) 언젠가는 내가 그 계기에 대한 책/팸플릿/기사를 쓸 수도 있기에 만약에 대비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찌 되었든 간에, 밴드는 끝났다. 얼마 못 갔었다. 우리는 끝났다. 우리의 마지막 두 공연은, 하나는 런던의 ULU에서 헤드라이너로 출연해 대략 800명 정도의 관객이 왔었던 (아직까지는 우리의 최대치다(↓9)) 공연이었고, 다른 하나는 Scala에서 한, Shellac 공연의 서포터로 나간 공연이었다 - 그리고 끝났다. 대단한 휴가였다. 나는 슬펐지만, 반발심리도 엄청나게 갖고 있었으며, 우울해지기를 관두기로 했다. 바로 다음날부터 새 곡을 쓰기 시작했다. 전부 좆같았지만 계속 썼다. 점점 덜 좆같아졌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The Klaxons가 나타났다 (그리고 가버렸던가?). 나는 토마토 페스토에 너무 심하게 빠져버렸다.


https://youtu.be/3o66g12emwE

지금 돌아가고 있는 것은 Future of the Left이며, 거의 mclusky 급으로 진행하고 있는 밴드인데, mclusky 급이라는게 무슨 소리냐면 toilet circuit (역주: 영국의 소규모 공연장 네트워크 비슷한 것)에서 중상위권 정도 차지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 글에서는 그 밴드에 대해서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미 많은, 너무 많은 곳에서 말해왔다) 돌이켜보자면 중요한 밴드이기는 하다. 내 인생의 9년을 차지하고 있는 밴드이니까. 지금까지, 투어를 도느라 7개의 직장을 버렸다(↓10). 무대 위의 사람들에 대해 말하자면 이 밴드는 좀 더 좋은 밴드다. 이 밴드는 살아서 숨쉬고 있으며, 멤버중 그 누구도 서로를 엿먹이기 위한 여러가지 수단으로서 이 밴드를 활용해야만 할 필요가 없는 밴드다. 물론 이 밴드에도 사람들간의 평범한 긴장이 있지만, 그런 긴장감은 있어야만 해서 있는 것, 누가 그걸 좋아하던 말던 상관없이 필요해서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내놓은 앨범은 우리의 최고작이었다(역주: [How to Stop Your Brain in an Accident]). 몇몇 사람들이 첫 곡이 Korn처럼 들린다고 말하긴 했지만, 정말로 우리의 최고작이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에겐 Korn 좀 덜 들으라고 충고하고 싶다(↓11). 투어도 꽤 팔렸다 - 점진적으로 늘어나고 있었다. 우리, 특별히 내 아름다운 아내는, 정말 쌔빠지게 일해서 여기까지 왔다. 가끔은 성공적이었고, 가끔은 실패했으며, 가끔은 충분히 재밌어서 성공하든 실패하든 별 상관이 없었다. 격동의, 괴상한 경험이었던 4AD시절을(↓12) 지나 잠깐동안 Xtramile (최고는 아니지만 충분히 좋은 사람들이었다) 에서 놀아본 후, 우리는 겨우 판촉예산을 마련해 우리 자신의 레이블을 세워 바이닐 판매만으로도 예산의 6~7배는 벌었다. 미쳤지 않나? 좀 이상하지만, 몇 천개의 패키지를 싸서 사람들에게 보내는 일은, 주소 목록을 보며 이 앨범이 수없이 많은 손을 거쳐 이국적인 이름의 도시에 어떻게 가게될지를 궁금해하는 일은, 한 인간이 살면서 할 수 있는 가장 만족스러운 일들 중 하나일 것이다. 이건 내 추측일 뿐이지만, 우리 밴드가 다른 밴드들보다 더 나은게 하나 있다면, 바로 체력일 것이다. 우리는 이 일에 인생을 버렸다. 우리는 하이네켄 캔을 손에 쥔 Mo Farah다 (물론 우리가 더 좋아하는 맥주는 Peroni다). 우리는 중독자다. 처벌받고 싶어 안달난 변태들이다. 미안. 하지만 그래야만 했다. 인생이다. 우리는 이 인생을 살아왔다. 저번주에 곡 몇개를 써보자고 미리 결정한 것이 아니다. 그냥 이건 전부다. 전부. 싫어한다는 건 우리와는 세포 레벨에서부터 관련없는 개념이다 (↓13).

다시 돌아가 보자, 별 건 없었지만…


https://youtu.be/K1N0nVqKoSE

1달전, 친구이자 하우스메이트였던 Matt (이녀석은 날 치킨으로 불태워 죽일뻔했던 놈이다 - 그것도 두 번이나) 가 내게 연락해 와서는, Newport에 있으며 1999-2002 동안엔 mclusky도 정기적으로 공연을 했었던 공연장 Le Pub이 지금 £10,000 상당의 비싼 방음설비를 설치하지 않으면 문 닫을 위기에 처해 있는데, 여기서 Future of the Left 공연을 해 줄 수 있겠느냐고 물어왔었다. 이미 올해 웨일스 남쪽에서 공연을 몇 번 했었던 상황이었으므로 나는 안 된다고 대답했었다. 우리가 받은 제안은 나름 정기적으로 진행할 일종의 (심사숙고 한 후에 이 단어를 쓰는 거다) 자선공연이었지만, 슬픈 사실은, 자선공연을 벌여봤자 관객 동원이 안 된다면 우리 밴드는 쓸모없는 밴드가 된다는 것이었다. 솔직하게 말해서 우리 밴드는 돈을 별로 못 벌고 있으며, 1년중 가장 보수가 좋은 공연 두 개 (보통 Cardiff와 London에서 있다) 중 하나를 포기하면서까지 그 자선공연을 할 수는 없었다. 당신들, 그러니까 독자 여러분들, 이를 믿어주었으면 좋겠다 - 만약 당신이 매 년마다 진짜 수입의 10%를 기부에 사용한다면, 당신은 나 같은 놈보다는 훨씬 더 좋은 남자/여자/이론상의 공간에 사는 외계인이다. 여하튼, 나는 대신에 말했다, 외계인 말고, 이 내가, 만약 우리가 mclusky 곡을 몇 개 연주한다면 어떻겠어? 그는 승낙했다, 제법 괜찮을 것 같다며. mclusky는 아니고, 그냥 Jack, Julia, 그리고 내가 곡 몇 개를 연주하는 식으로. 우린 심지어 붉은 머리의 웨일스 남자 (훌륭한 밴드 St.Pierre Snake Invasion의 Damien) 를 구해, Jon이 보컬을 맡았던 노래들을 맡길 수 있었다. Jarcrew도 불러다 곡을 몇 개 하게 시키자구, 내가 말했다. 좋지, 그가 답했다. Matt가 Jarcrew와 교섭했다 (↓14).

Jarcrew가 뭐하는 녀석들인지를 모른다면 (아마도 모르고 있을게 분명한 거 같으니, 분량조절은 진작에 실패했지만 그래도 또 적어보겠다), 그 밴드는 (거의) Ammanford 출신인 밴드로 내가 봐 왔던 밴드들 중 세계에서 가장 대단한, 최소한 이 세계(바로 나)에서는 가장 끝내주는 라이브 밴드였다. Bash Street Kids(↓15) 같아보이기는 하고 가끔은 상황을 너무 좆같이 망쳐대서 웃음거리 이상의 심한 꼴로 박살날 것 같기는 했지만,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녀석들이다. 보컬 Kelson은 Future of the Left에 참여해 우리와 같이 활동하기도 했었는데 결국은 밴드를 때려치고 방황하다 치과의사가 되었으며 (진짜다 - 몇 년이 지나자 능숙한 미친놈처럼 으스대면서 이빨을 뽑아대고 있었다), 언제나 내게 솔직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제의를 받아들였다. 우리는 공연 공지를 올렸다. 티켓은 몇 분만에 매진되었고, 해서 우리는 좀 더 규모가 커서 사람도 많이 수용할 수 있는, Cardiff의 Clwb Ifor Bach(↓16)에서의 공연도 추가로 편성해서 공지했다. 그 공연 티켓도 몇 분만에 매진되었다. 끝내주는 기분이었지만, 이 대성공은 우리들의 성공이라거나 돈을 퍼부어댄 스포츠 팀이 이뤄낸 것 같은 느낌의 성공이 아닌, 완전히 다른 성공이었다. 우리 같은 레벨의 밴드들은 하다보면 어쩔 수 없이 자기중심적으로 돌아가게 될 수 밖에 없는데, 따라서 우리를 일으켜 세워주고 유지하는데 큰 도움을 줘 온 소규모 공연장들의 생태계에 이렇게 도움을 주게 된 경험은, 이 세상의 밑바닥이라는 곳이 우리의 보잘것 없으면서도 온 세상에 가득 차 있어서 겉보기에 중대해 보이기는 하는 하찮은 욕망들만으로 차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가치들도 있다는 것을 다시금 일깨워주는 좋은 경험인 것이다.


https://youtu.be/4HtO9BrTAIE

그 다음날엔 전화 인터뷰를 했다. 기자는 'mclusky로 다시 한 번 고향에서 매진을 날린 느낌이 어떤가?'라는 질문을 해 왔다. 답은 나도 잘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단 한번도 매진을 날려 본 경험이 없었으니까. 기자는 믿지 못했다. 'mclusky 인기가 대단하지 않았어?' 물론 대단하긴 했지, 단지 우리집 거실에서나, 아니면 우리들의 상상 속에서나. 내가 기억하는게 맞다면 4년간의 mclusky 투어 동안 우리가 매진에 성공한 공연은 UK에서 2개(둘 다 런던이었다), 뉴욕과 시카고에서 하나씩, 그리고 호주에서 몇 번이었고, 모두 정말 대단한 경험이었지만 (실적은 이것보다 못했어도 위대했던 밴드들이 많이 있다) 전설적이라고 부르기에는 한참 모자란 것들이었다. 4분만에 매진이라는 것에는... 한참 못 미치는 공연들이었고. 일자리도 없이 잔뜩 지쳐있는 채로, 나는 멍하게 자리에 앉아 습관적으로 Future of the Left 공연(다 괜찮은 공연장에서 하는 것들이었다) 티켓이 느리게 팔리고 있는 것을 가만히 응시하면서, 인생을 규정할 만한 사건이라 부를만한게 뭐가 있는지에 대해 생각했다. Belfast에서 하려고 했었지만 티켓이 3장밖에 안 팔려서 취소할 수 밖에 없었던, 하지만 취소에 대한 불만 메일은 21통이나 받았던 공연도 있었다. Zagreb에서 했던 공연은 정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멋진 공연이었고, 무대에서 웃음을 참으려고 열심히 노력해야 할 정도였었지. 1,500 km 를 달려 Stockholm까지 갔었지만 관객은 단 4명뿐이었던(그 중 2명은 핀란드에서 왔던 사람들이었다) 때도 있었고. Seattle, Melbourne, 그리고... Lincoln(↓17). 완전히 틀려먹었으면서도 동시에 옳았던, 저주받았다고 봐도 좋을 정도로 불행했으면서도 동시에 돼지처럼 취해있었던 때에 대해, 하지만 보통은 밴에 앉아 다른 녀석들이 코를 골아대는 걸 듣고 있어야 했던 때에 대해, 일화들, 일화들의 주인공인 그 밴드처럼, 다시금 말할 때마다 점점 더 나아지고 거대해지고 더 유명해지는 일화들에 대해서. 관중들(그래, 가끔은 관중들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사람이 있긴 했다) 앞에 서서 단순히 내가 내 자신대로 행동하는 것 만으로도, 물론 나는 가끔 개자식이었지만, 관중들과 무언가를 소통하고 있다고 느꼈던 순간들에 대해.

그리고 나는 떨쳐내고 일어나 곡을 썼고, 고양이 밥을 줬고, 소변을 봤다(그랬던가?). 좆까라. 만약 당신들/우리들/그것이 과거를 존중해야만 한다면, 나는 '우리'는 적어도 좋은 명분을 갖고 과거를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적어도, 하나의 좋은 명분은 있는 것이, 공연을 위한 장소가 아직은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나는 정말로 정중하게 말하고자 하는데 - Newport는 아직 문화수입을 위한 장소를 잃어버릴 필요까지는 없는 곳이다), 그리고 우연하게도 그 필요가 몇몇 인간들의 소망, 우리에게 한 두어시간 정도는 의미 있을 것을 기억하고자 하는 소망 및 그 순간들을 넘어서 계속해서 스스로 활동하고 있는 두 밴드를 보고 싶다는 소망과 맥을 같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압박하려는 건 아니라고? 그냥 음악과 생각/생각없음(각자 좋다고 생각하는 쪽으로)에 빠져들어 황홀감을 느껴라. 물론 나는 한 두어번 정도는 Jon이 서 있던 자리에 눈길을 던지고는 생각할 것이다, 아, 그냥 다시 ... 하지만, 맹세하건대, 나는 그 생각을 마무리하지도 않을 것이다. 분명히 지루할 거다. 따분할 거라고. 내 생각에는, 평범해 빠진 일이 될 거다. 제대로 될 리가 없지. 우리 모두가 Mission of Burma처럼 될 수는 없는 것이잖나(↓18).


https://youtu.be/OgkzRE89Gyw

아무튼, 이게 재결성에 대한 내 생각이다. 좀 더 일반적으로 쓰고 싶긴 했는데, 옛날 일들이 생각나 감정적으로 되어간 것 같다. 공연에 올 양반들은 충분히 즐겨줬으면 좋겠고, Future of the Left 공연들도 즐겨주었으면 좋겠다. mclusky 곡을 연주하는 건 멋진 일일 것이고, 그 후 그것들을 잊어버리는 일도 멋진 일일 것이다. 공연이 끝나고는 맥주(4잔)를 마시고 친구들과 얘기하며 기억을 공유하고 있었던 일들과 있었을 법했던 일들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나는 ... 됐다. 나는 아무것도 안 바란다. 바라는 것 따위는 관둘 거다. 그냥 할 거라고. 강박적으로. 소원 같은건 집어넣어라, 애송이들아. 소망같은 걸 가져봐야 괴혈병이나 걸리게 될 거니까. 그런 건 옛날 사진을 보면서 적어도 헤어스타일은 지금이 더 낫다고 우기는 거나 다름없다. 뭐, 물론 그게 사실일수도 있지만, 어쨌든, 날씨가 추워지면 모자가 필요한 건 옛날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이 좆같이 멍청한 새끼들아.

Falco


https://youtu.be/GD0J3TT9z-A

Ps. 그건 그렇고, 나는 적절한 조건의 mclusky 재결성은 언제나 환영한다. 내 몫의 돈은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높게 보일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지만) 6개월간 활동하는 조건으로 20만 파운드(역주: 대략 25만 달러)고, 6개월 기간동안 5일마다 하루는 공연을 안 해야 한다 (내 귀중하고 약한 목소리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차가운 라거 맥주와 빵, 고기, 치즈들도 필요하다.

PPs. 아직 올리브는 잘 못 먹겠다. 이건 미리 말해둬야 될 것 같았다.


각주
↓1 물론 정말로 그러라는 건 아닌데, 여하튼 주목 끌기는 성공했지 않았나 싶다. 만약 아니라면, 좀 더 도발적인 사진을 걸어둔, 내용도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그런 글들을 읽으러나 가라.
↓2 대부분 말이다. 대부분.
↓3 대부분 말이다. 대부분.
↓4 나는 단 한번도, 여성의 성이 '개년'이 아닌 이상에야, 여성을 '개년'이라고 부를 수 있다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여기에 일종의 의구심이 생겨나게 되었다.
↓5 내 두 밴드들 중 하나라도 그런 잡지에 정말로 실렸던 적은 future of the left가 라이브 앨범 'last night I saved her from vampires'를 발매했을 때 Kerrang (느낌표는 저자의 재량으로 삭제했다) 에 나왔을 때였는데, 그 때 잡지사 놈들은 이 앨범이 Halloween과 어떻게 연관되어 있나를 갖고 잔뜩 흥분해서 글을 써 댔었다. 딸쟁이 신부같은 새끼들.
↓6 빵 그리고 빵. 푸딩이여 영원하라.
↓7 그 놈이 채식주의자로 전향했을 때 나는 단순히 그놈을 괴롭히기 위해서 먹는 고기 양을 두 배로 늘렸었다.
↓8 그러니까, 살 빼기 전의. 아마 요새 Reznor는 호텔방 문을 부수고 쳐들어가서는 죄인 놈들을 "등신들의-피로-만든-프로틴-쉐이크"로 증류하면서 돌아다닐 거다.
↓9 이 공연 녹음이 mcluskyism (시치미 뚝 떼고 철면피로 발매했었던 우리 컴필레이션 앨범이다) 3번째 CD에 있고 아마도 인터넷 어딘가에도 있을거다. 사람들이 흔히 밴드 해체와 엮어서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게, 이 공연을 할 때 무대 위에 이상한 긴장감 같은 것 따위는 거의 없었고, 꽤 즐거운 공연이었다. 하지만 ULU에서 했다는 건 이전까지와는 좀 다른 것이긴 했다. 이미 죽어버린, 하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아직) 그 사실을 말할 수는 없었던 밴드에게는 대단한 축하연이었다. Shellac과 함께한 공연은 이전까지의 공연들과 비슷하게 괜찮은 공연이었지만, 우리 치고는 좀 가라앉은 느낌이기는 했다. 물론 대단하기는 대단했다.
↓10 그리고 동정을 바라면서 이런 말을 하는 건 아니다 - 그냥 내 인생이라는게 어떤지를 보여주고 싶은 거다. 티크로 잘 만들어서.
↓11 듣기로는 최근 Machine Head는 새 USB 케이블을 달았다고 하던데.
↓12 우리의 2번째 앨범에 대한 언론 인터뷰를 하러 Wandsworth의 4AD 사무실로 신나게 달려갔지만 막상 도착해서는 사람들이 새 Horrors 앨범 때문에 얼마나 들떠있는지에 대해서만 질리도록 듣고 나왔던 경험을 기억한다. 아주 멋진 경험이었지. 물론 4AD는 이미 우리를 버리기로 결정한 지 오래인 상태였었다. Beggars 그룹과의 인연이 언제나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는 말을 꼭 해야 할 것 같은데, 하지만 Too Pure 레이블이 망한 후 4AD로 이적했을 때, 음악을 만드는 일은 우리를 위한 일이라기보다는 숟가락으로 우리 면상을 때리는 것에 가까웠었다.
↓13 정말로 그런 건 아니다. 그냥 이런 표현을 잠깐 즐기고 있는 것 뿐이다.
↓14 Matt가 기억하기로는 이 대화는 조금 달랐다고 한다. Jarcrew를 추천한 건 Matt라고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반대로 기억하고 있는데, 뭐 어떤 쪽이든 괜찮다.
↓15 아니면 Wacky Races의 Ant Hill Mob.
↓16 Welsh Club이라고도 알려진 곳이다. 멋진 곳이지.
↓17 그래, Lincoln은 좀 아닐 수 있다. Lincoln은 관객들이 우리를 웨일스 놈이라고 생각해서 우리에게 양 울음소리를 질러댔던 곳이었다 (다른 한 장소에서는 우리를 칼라일 놈들이라고 생각해서 똑같은 짓을 했었다).
↓18 그리고 우리는 정말로 Mission of Burma가 될 수는 없다. 그건 불공정한 일이다.

Note. '딸쟁이 신부'라는 단어의 출처를 밝히지 않을 수가 없네. 감사합니다, Gordon Allison.


  • 잠자 2017.06.19 00:26
    lp 재발매나 했으면 .. ㅠ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사케르 연말 결산 21 update 김영준 2017.11.30 506
12288 메시, 르브론 팬인지 10년이 넘었는데 2 김영준 2017.07.22 368
12287 올해 페스티벌은 전체적으로 다 망삘인듯 1 미용티슈 2017.07.21 603
12286 린킨 파크 보컬 체스터 베닝턴 사망... 자살 추청 2 HIPHOP=SEX 2017.07.21 540
12285 지루함 quaang 2017.07.20 222
12284 2017년 페스티벌은 어떤가 3 미시마유키오 2017.07.19 529
12283 오사카 타워레코드갔다왔습니다 3 LORDQUAS 2017.07.18 361
12282 올해 후지락 가시는분 있나요? 3 tK 2017.07.17 331
12281 조관우 노래 커버해봅니다 ^^; U47 2017.07.17 135
12280 라디오헤드의 이스라엘 공연 BEEF 3 41번가맙딥 2017.07.13 607
12279 레드벨벳 신곡 10 Sweetwater 2017.07.09 1059
12278 내 사무실 김영준 2017.07.06 586
12277 이효리 5 kyob 2017.07.05 821
12276 댕나 오랭망이당 실버실 2017.07.04 190
12275 전국적으로 포스트락,슈게이징,싸이키델릭 밴드를 구인합니다 6 포스트락드러머구함 2017.07.04 523
12274 일본 노래 1 례아 2017.07.04 344
12273 짜가리 신쓰 ' Arcadea - Arcadea ' HIPHOP=SEX 2017.07.03 112
12272 아이돌 음악 추천 좀 부탁해봐도 될까요? 13 호박들 2017.07.02 604
12271 죄악의 나날 3 산책비 2017.06.29 421
12270 SUGAR CANDY MOUNTAIN 좋다 1 메피 2017.06.27 303
12269 스토너풍 관심 있으면 ' Sasquatch - Maneuvers ' HIPHOP=SEX 2017.06.24 165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620 Next
/ 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