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ágtázó Halottkémek(흔히 VHK로 줄여서 말하곤 합니다)은 헝가리 밴드입니다... 헝가리가 아직 공산정권 아래에 있던 시절인 1975년부터 활동을 시작한 밴드인데, 딱히 정치적인 밴드는 아니었지만 선동의 위험성이 다분하다고 여겼는지 헝가리의 공산정권은 공연을 포함한 VHK의 모든 공식활동을 금지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부다페스트에서 이들의 인기가 상당했고 VHK 멤버들도 호락호락한 양반들이 아니라 몰래 공연을 돌며 공산정권 시절의 부다페스트 지하 문화에 크게 기여했다고 하네요... Jello BiafraIggy Pop이 이들을 보기도 했고, Alternative Tentacles 레이블을 통해 서방세계에 음반을 내기도 했었습니다. 전성기 시절 VHK의 공연은 에너지와 선동적인 분위기가 대단해서 관객들이 폭동을 일으킬 뻔한 경우가 꽤나 있었다고 합니다...
VHK의 보컬 겸 리더가 Attila Grandpierre라는 사람인데, 이 분이 좀 특이한 사람입니다. VHK활동을 하면서도 천체물리학 박사를 따고 헝가리의 Konkoly Observatory에서 최근까지 senior research fellow로 재직했다고 합니다. 연구분야를 대충 보니 상당히 비주류 학자인듯 합니다만... 학술지에 논문도 몇 편 냈었고 책이나 글도 자주 쓰는 듯 합니다.

이 글은 Attila Grandpierre가 1984년 썼던 글이라고 합니다. 사실 VHK는 영미권 펑크의 영향을 받았다기보다는 독자적으로 자라난 밴드라고 하는데, 무튼 펑크와 유사성이 꽤나 있기도 하고 Attila Grandpierre가 펑크를 좋아하기도 하고... 펑크와 민속음악에 대한 주장입니다.
VHK의 장르를 "Shaman punk" 또는 "Psychedelic punk"라고 분류하기도 합니다. 음악도 그런 분위기입니다... 구 공산권의 대중음악에서 가장 에너지 넘치는 밴드들 중 하나로 꼽기에 손색이 없지 않나 싶습니다.

언제나처럼 번역의 퀄리티는 매우 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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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grandpierre.hu/site/1989/01/punk-as-a-rebirth-of-shamanist-folk-music/


http://www.youtube.com/watch?v=XnPFV9Cz9QE

펑크: 샤머니즘 민속 음악의 부활 (Punk As a Rebirth of Shamanist Folk Music)
예술이 가진 마법적 힘의 작용 (The Magic Forces of Art at Work)

Attila Grandpierre
영문번역: Csaba Toth

20세기에 들어 새롭게 나타난 문화현상들 중, 일반인들 뿐 아니라 음악가 및 음악 애호가들까지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현상은, 바로 '펑크'다. 이 에너지 넘치는, 생명력으로 가득한 음악은 청자를 '일상적인 삶' 같은 것을 완전히 놓아버릴 수 있게 할 정도로 강렬하며, 단순히 새로울 뿐인 피상적 "유행" 같은 게 아닌 '예술' 자체의 급진적인 재해석임을, 문화충격들과 늘 한결같은 급진주의로 인해 이제는 잊혀져버린 고대의 문화까지 되돌아갈 수 있을 정도의 것임을, 다양한 예술계 종사자들의 주목을 받을 가치가 충분한 것임을 스스로 입증하고 있다. "선사시대"의 음악은 어떤 역할을 하였는가? 토템 음악, 샤머니즘 의식의 음악은 진정으로, 효과적으로 작용하여 사람들이 황홀경으로 도달할 수 있게 해 주는 마법적인 힘이었으며, 또한 그 힘을 통해 의식의 참여자들이 자기 자신과의 관계 그리고 이 세계와의 관계를 상징적 질서로 정렬시킬 수 있도록 하여 실질적인 '활동'을 수행할 수 있게 해 주는 첫 단계였었다. 음악은 자신이 이끌어낼 수 있는 모든 힘을 동원하고, 준비하고, 축적하는 과정이었으며, '자신'과 '의지'를 리듬으로 강화하여 평소에는 숨겨져 있던 능력들을 다시 한 번 가동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었다. 음악의 목적은 바로 인간에게서 '황홀경'을 이끌어 내는 것이었다.
황홀경(ecstasy), 아마도 "intasy"라는 철자가 더 어울릴 이 개념은 감정의 이입이며, 가장 높은 단계의 자기 인식이고, 의존의 단계에 머물러 있던 '자신'을 독립의 영역으로 상승시키는 것이고, '자신'을 하나의 근본에 대한 독립적인, 총체적인, 직접적인, 그리고 개인적인 개입으로서 돌아보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황홀경이란 밀도와 강도 측면에서 정점을 찍는 경험이었다. 황홀경은 대자연의 힘과 함께하는 통일체에게, 그 만물의 전형에게 이입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 주었다. 음악을 통해 우리는 우리 개인들의 세계에 씌워진 틀을 초월할 수 있었으며, 모든 감각들, 감각들의 총체, '그들'의 감각영역에 이입할 수 있었고, '그들'안에서 우리는 세계의 근원적인 통일체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경계 없는 경험의 영역에서 조화로움에 이입함으로써, 우리는 우리의 가장 내밀한 감정을 인식할 수 있는 동료들을 찾을 수 있었으며, 모두가 공통된 운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 차원에서 물질계의 압력, 물질적 존재의 한계, 시간과 공간의 무한한 힘은 사라져 버리고, 개인의 소망과 욕망은 축적되어 질적인 변화를 거쳐 보다 더 거대한 질서의 일부로, 공동체라는 감각의 현현으로 변형되었다. 개개의 생각들은 구체적인 아이디어로 변형되어갔다. 이 모든 것들은 감정의 폭발을 불러일으켰으며, 이 폭발은 스스로가 인지하는 본인의 쓸모없음을 쓸어내버리고 그 자리에 대신 중요한 의미와 책임감을 들여놓았고, 개인에게 우주적인 위치를 부여함으로써 자신보다 훨씬 더 거대한 자연과 사회의 힘 앞에 성공적으로 맞설 수 있는 능력을 주었다. 음악과 예술의 창조로 인해 능동적인 존재로써의 인간이라는 모습이 마침내 도래할 수 밖에 없게 된 것이었다. 여기에 관해 좀 더 구체적인 예제를 살펴봄으로써 이게 무슨 의미인지를 알아보도록 하자!


http://www.youtube.com/watch?v=0MmRE2N7Te0

"당 신 은 내 게 로 온 다,
당신은 내 목소리를 듣는다.
그렇다, 당신은 내 목소리를 듣는다.
나는 당신을 위해 노래한다,
당신은 내 노래를 듣고 있다.
나는 당신을 위해 춤을 춘다,
당신은 내 목소리를 듣는다.
내 모든 힘을 다해 소리칠 것이다,
나는 지금 소리지르고 있다,
소리지르고 있다.
내게 오라.
오라, 오라!"
- "The Song of Shaman Orocs"
in Viloms Dioszegi, [A samanhit emlekei a magyar nepi muveltsegben(Relics of Shamanism in Hungarian Folk Culture)], Budapest, Akademiai Kiado, 1958, p. 420.

서술적인, 민족지학적인 분석은 민속학자들에게 맡겨 두고, 우리는 원문 자체에 집중하여 샤먼이 지금 소환하려고 하는 사람이 대체 누구인지를 알아보도록 하자. 샤먼의 어조는 위압적인, 아니 거의 고혹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이고, 샤먼은 지금 부르고 있는 자에게 주술을 걸려고 하는 것 같다 - 이 '부름당하는 자'는, 참고문헌 내의 주장을 따르자면, 일종의 초자연적인 힘이자 영혼이다. 하지만, 과연 샤먼이, 이 초자연적인 힘에게 어떤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존재인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며, 일반적으로 샤먼이라는 자가 위와 같이 소리를 질러대는 방식으로 영혼에게 명령을 내리고 싶어한다고 생각하기도 힘들 것이다. 이제 'Cracking'이라고 부르는, 헝가리의 Hortobagy와 같은 곳에 여전히 존재하는 민족 풍습을 생각해 본다면 이 원문에 대해 좀 더 정확한 분석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섣달 그믐날 오후, 대략 5시경, 행사는 성의 안뜰에서 시작된다. 모든 목동들, 청년들, 애송이들은 시장으로 향한다. 시장으로 향하는 길, 그들은 채찍을 휘두르며 에너지로 넘치는 상태가 된다. 시장 마당에 모여선 그들은 과격해지기 시작한다. 연장자가 종을 울리며 나팔을 불고, 하늘에 총을 쏘면, 청년들은 폭죽을 던져댄다. 교회에 불이 들어오고, 세 개의 교회 종이 울려퍼질 무렵, 지옥과도 같은 소란은 정점을 찍는다."
- O. Malanasi, [A szoboszloi juhaszat (Sheep herding in Szoboszlo)], Neprajzi Ertesito XX, p. 18

이 풍습의 목적은 지나간 해를 쫓아내버리는, 즉 "쓸모없어진 날들을 쳐내버리고" 새롭게 다가오는 날들을 위한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다. 즉 엄청난 음량의 소음은 일종의 억제력으로 작용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샤먼은 대체 누구를 억제하는 것이며, 어째서 자신에게 무언가가 강림하기를 바라는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해 가능한 답은 단 하나다: 샤먼은 자신을 제외한 모든 타인을 제지하는 것이며, 따라서 "외부의" 영혼을 불러오는 것이 아닌 자신을, 스스로가 갈구하는 자신의 총체적인 힘을, 자신이 가질 수 있는 능력의 최대를 불러오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샤먼이 말하는 단어들은 마법적 힘으로 스스로를 일깨우게 하며, 이와 같은 단어들을 암송하고 그에 따라서 행동하는 것을 통해 샤먼은 자신의 감정적인 준비 상태를 최대한으로 증폭시켜 "자신이 낼 수 있는 한 최대의 힘으로 소리지르는 것"을 통해 "초자신(supraself)"을, 자신을 넘어선 자신을, 그 자신 속에 숨어있던 어떤 움직임을 구현하게 되는 것이다.
이 예시는 음악의 원초적인 목적을 보여준다. 이 관점에서 현대의 음악이 하고있는 역할에 대해서 분석해 보도록 하자. 클래식, 또는 "진지한" 음악은 사실상 인공적으로 계산된 "화음" 법칙에 의해 지배되는 시스템이며, 엄격한 메커니즘에 따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정확히 그 사실 때문에, "화음" 법칙을 따라간다는 이유에 의해, 클래식 음악은 샤먼의 음악 또는 고정된 패턴을 벗어나 불협화음도 포함하는 현대음악이 갖는 그 원초적이고 자유로운 힘을 결코 갖지 못한다. 20세기 인류의 비극들은 음악에서의 불협화음 활용을 불러일으켰으며, 이에 음악은 불협화음을 통해 인류의 정신에서 끓어오르던 부조리를 표현했다. 역사적으로 엄격한 체계(화음 규칙, 12음 규칙 등)는 음악을 점점 더 공허하고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어왔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펑크는 흔히 '진지하다'고들 하는 그런 음악들을, 이름에서부터 "진지한" 음악들을 적대시하며, 그 "진지한" 음악들은 권위의 뒤편에서 부풀어오르고 있는, 삶과는 하나도 연결되지 못한 격리된 음악이라고 비난한다. 이와 같은 격리는 끊임없이 재생산되며 "절대적인" 기준의 뒤편에 "엄청난 고립"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어떤 작디작은 무언가가, 건강하면서도 신선한 불협화음이 이 클리셰의 행렬을 진정한 '삶'의 흔적으로 갈아치우며, 자발적이고 연속적이며 독립적인 방식으로 음악극과 음악적 플롯을 창조하는 것이다.


http://www.youtube.com/watch?v=1H_c0Q7ewVE

무엇이 클래식한 음악을 만들었는가? 사회의 변화와 노동량 배급의 증가는 사람들의 삶에 대한 독립적인 통제권을 없애갔으며, 인류의 진정한 요구는 간단히 무시한 채로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궁정음악', 정통음악만을 양산했었다. 이상한 것은, '민속음악'이라는 개념은 엘리트들의 자화자찬격인 음악, 클래식 음악, 인공적인 음악, 즉 민속음악이 아닌 음악 영역에서 먼저 정립된 개념이라는 것이다. Bela Bartok에 따르자면,
"민속음악은 인간의 음악적 본능을 강력하고 원초적인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이며, 그 어떤 문화적 영향도 받지 않은 무의식중의 순수하고 진정한 형태의 음악이다. … 자신이 속한 국가의 정신과 가장 깊숙한 비밀들속으로 빠져들어갈 수 있는 사람만이 '민속음악'적인 음악을 창조할 수 있다."
- Bela Bartok, [A Nepzenerol(On Folk Music)], Budapest, Magveto Kiado, 1981

Bela Bartok이후 '민속음악'의 기준은 다음과 같이 세워졌었다: 민속음악이란 그 어떤 클리셰나 참고자료 없이 가장 깊은 내면의 영감(inspiration)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스스로를 표현하기 위해 순간의 모든 차원을 더듬어 가며 자급자족으로 발달한 음악이며 그 영향력에 있어 원초적인 힘을 갖는 음악이다; 그것은 세계를 표현한다; 자신의 신선함과 개인성을 통하여. 민속음악은 스스로 완성된, 강력하면서도 근본적인 자기표현이며 총체성을 향하는 음악이다. 고대의 민속음악은 보편적이면서도 진정했으며 따라서 딱히 '민속음악'이라는 이름으로 불릴 필요도 없었다. 고대의 음악은 인류의 진정한, 가장 심원한 곳에 숨겨진 욕구를 표현했으며, 따라서 진정한 '민속음악'이었다. 즉 클래식 음악은 음악의 기능 중 특정한 부분을 제거하는 식으로 존재하는 음악이며, 다시 말하여 이 세계가 양분되었음을 반영하는 지표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은, 좀더 근본적인 질문에 집중해 보자. 예술이 인류의 삶에 어떤 역할을 해 왔는지를 검토해 보도록 하자!
예술이라는 것이 탄생한 시기가 인류 자체가 진화해 나온 시기와 일치한다는 건 이미 잘 알려져 있으며, 또한 그 어떤 사회에서도 예술은 항상 존재해 왔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예술을 그토록 필수적인 요소로 만들었는가? 그리고, 현대의 예술은 그 '목적'을 충분히 달성하고 있는 것인가? 이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선 우리는 예술을 하나의 단일한 것으로 보아야, 인류의 삶의 목적과 동일한 목표를 갖는 행동으로 보아야만 한다. 인류의 물질적인 존재를 지속하기 위한 작업들; 예술은 삶 전체를 볼 수 있게 해 주었다. 인류는 시간의 흐름과 미지의 영역에 언제나 도전해 왔으며, 자신의 내구력과 총체성을 보존하려 노력해왔고, 언제나 가능한 모든 삶과 얻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얻기 위해 살아왔으며, 시간이 흐를수록 보다 더 완전하고 완벽한 방식으로 이를 달성하려 해 왔다. 하지만, 예술의 영역에서 우리는 실재하는 것만을 따져서는 안 된다(예시: art-ificial)-왜냐하면, 예술은 독창적인 '상상력'의 산물이고, 상상력의 법칙들은 인류 정신의 법칙이지, 물질계의 법칙은 아니기 때문이다. 상상력과 감정의 영역이 갖는 가장 중요한 특징은 '적응'이 아니라 '충족'이다. 그리고, 바로 그 충족을 위한 상상력이야말로 마법적 힘으로써의 진정한 음악을 창조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다. 여기서 '마법적'이라는 단어는 무슨 의미인가? 마법적인 행동은 스스로 완전해질 수 있는, 마법적 힘을 갖는 행위이다. 진정한 민속음악은 언제나 마법적이다. 음악이 어떻게 마법적일 수 있는가? 변화의 힘을 갖기 때문이다; 더욱이, 음악은 인간을 진정한 우주적 차원으로 올려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참고: Dr. Elemer Gyulai, [A Lathato Zene(The Visible Music)], Budapest, Zenemukiado, 1968
   Maria Sagi, [Esztetikum Es Szemelyiseg(Aesthetics And Personality)], Budapest, Akademiai Kiado, 1981)

음악의 창조는 완전하면서도 가장 고차원의 상상력이 작동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준다. 음악은 예술들 중 가장 추상적인 예술이며, 따라서 가지고 있는 제한 또한 가장 적다. 민속음악에서는 정수(essence)와의 조우와 함께 굳건한 규칙들과 제한들로부터의 탈출이 일어나게 되며, 거친 음악은 상상력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독립적인 행위이다. 그리고 상상력이란 두뇌의 행동이며, 규정된 패턴에 의한 왜곡이 가장 적은, 현실적인 상황에 맞추어 조정할 필요가 없는 생각이다. 현실에 맞춘 "상상력"은 더 이상 상상이 아니면서 맥락에서 완전히 벗어나버린, 이성적이고 경험적인 지식에 불과하다. 상상력은 본질적으로 창조적인 행동이기에, 무언가에 맞춰 '조절'되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음악은 그 무엇보다도 더 완전하고 보편적인 형태의 창조적 상상이며, 어떠한 외부의 도움 없이도 스스로 완전해질 수 있는 원초적이고 강력한 예술 행위이다. 그러므로 가장 마법적인 것이 된다. 에너지로 충만한 아이디어들은 그 상상 속에서 무한한 밀도로 쌓여가 결국 불가피하게 방출되고, 이 방출되는 에너지는 인간의 마음 속 불필요한 고민 따위들을 한 번에 쓸어버리고는 인간을 공동체적인 영역으로 상승시킨다.


http://www.youtube.com/watch?v=kqtB7XZ7CX4

정신분석학자들이 밝혀냈듯이, 인간의 정신세계는 다음 두 가지 힘(또는 원칙)의 "전쟁터"이다:
a) 비이성적인 환희의 원칙, 직접적이고 통제불가능한 본능의 배출.
b) 이성적인 제지, 현실적인 원칙.

b)는 본능의 즉각적 만족을 제지하는 모든 외부적/내부적 장애물들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상상력의 작동은 욕망의 충족과 직결되며, 외부의 간섭이 없는 완전한 본능의 체계를 확립한다 - 욕망의 밑에 깔린 욕망의 반영들을 말이다. 상상력은 '주관적으로' 가능해 보이는 세계들을 창조하며, 너무나도 완전하고 풍성하여 그럴듯해 보일 수 밖에 없는 세계들을 만들어 낼 수 있는 힘이다. 그리고, 그 세계들 중 가장 완전한 것을 선택하여, 창조의 과정을 통해 형태를 잡아가는 능력이다. 이 점을 고려해 보면 물질계에서의 인류의 진보에는 상상력의 활동이 무엇보다도 더 중요하며, 새로운 예술 작품을 통해 자기표현과 자각에 도달해야만 그 진보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예술적 과정'은 가능성을 탐구하는 행동을 더 적절한 방식으로 수행할 수 있게 해 주며, 상상력의 총체를 발전시킨다. 즉, 현실은 그저 상상에 잠재된 에너지를 활성화시키고 활용하는 것에서만 의미를 갖게 된다. 만약 우리가 현실을 더 고무적인, 더 창조적인 방식으로 활용할 수만 있다면, 우리의 행위는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우리의 행위는 그 자체로서만이 아닌 다른 것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중요해질 것이며, 음악적, 아니 더 나아가 언어적인 요소로 변형될 것이고, 마치 언어에서 한 문장을 해석하기 위해서는 다른 문장들도 같이 고려해야만 하는 것처럼 세계의 언어로 변형된 우리의 행위들 또한 한 행위가 다른 행위를 암시하면서 그 상호관계를 통해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이 "과량의 의미"를 통해 개인의 '감정 이입'은 점점 더 강해지며 임계점을 넘어가 연쇄반응과 같이 폭발적인 행동들이 발생하게 된다. 같은 방식으로 이 폭발의 뒤를 이어 발생하는 현상들은 중요하지 않은 세부사항들을 전부 뒤로 밀쳐버리며, 한 행동은 그 행동의 뒤를 이어 일어날 것들의 맥동에 의해, 그 자신의 강렬함의 무한한 팽창과 그 자신의 리듬에 의해 완성된다.

자, 우리는 연역적 추론을 통해 펑크 음악의 특성에 도달하게 되었다 - 이 특성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분석할 것이다. 인간은 선천적으로 상상력을 지니고 태어나며,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가능한 모든 행동의 가능한 모든 변형을 전부 경험하고자 하는 욕망을 갖고 있고, 자신의 잠재력을 발전시키기 위해 의식적으로 계획을 세워 실천한다; 인간은 세계를 일종의 악기로, 예술적인 대상으로서 활용하며, 이 세계의 모든 가능성, 가장 비밀스러운 영역의 가능성까지도 탐구하고 실현할 능력을 갖추고 있다. 인간은 자신의 지식과 힘 아래에서 세계를 강제할 여력을 갖고 있으며, "세계 악기(world instrument)"를 연주하며 찬가(anthem)를 노래함으로써 자신의 존재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자신의 존재를 공표하고 끓어오르는 강렬한 힘을 보유함으로써, 인간은 구체화된 의지가 되어 사건의 경계선을 초월하여 질주할 수 있다. 인간의 육체 또한 춤과 노래의 악기가 되며 엄청나게 증폭된 감정을 분출시키는 매개체가 된다. 목소리는 내면에 축적된 것을 구체화시키는, 내면과 외부세계를 전위시키는 수단이다. 음악은 상상력 속에 내재된 오토마티즘을 일깨우며, 생명의 본능과 삶의 의지를 강화한다. 음악과 감정 사이의 관계가 바로 이런 것이다; 말하자면, 감정은 생명의 본능이 구현할 수 있는 가장 강화된 형태의 현신이며, 충동은 점점 더 강력해지고, 마침내 감정의 거대한 파도와도 같은 엑스터시가 모든 '제한'을 쓸어버리는 것이다.


http://www.youtube.com/watch?v=7VjR1mVVmHc

이제 음악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리듬'에 대해 고려해 보자. 리드미컬한 행동이 가지는 해방감은 반복적인 행동이 인간의 정신에 침투한다는, 자동화되어 반사적 작용에 가까워짐으로써 행동 자체가 의지에 의한 것이 아니게 되어버린다는, 그리하여 그 행동으로 인해 소진되던 정신적인 에너지가 자유를 얻게 된다는 사실에 기반한다. 정신적인 에너지는 언제나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도록 준비된 것이 아니며, 따라서 그 에너지가 표면화되어 자동성을 갖게 될 때 폭발적으로 넘쳐흐르게 되어 춤, 노래, 외침의 형태로 발산되는 것이다. 이 환희는 현재 자신이 '행동의 단계'에 위치한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되는 것에서 나오는 것이며, 이 환희의 모습은 우리의 의지와는 무관한 창조의 연속이다 - 이 '장난'은 한때는 잊혀졌었지만 지금 다시 새롭게 나타난 세계에서의, 환영의 공간에서 사물들과 행동들이 승리의 춤을 추며 축제를 벌이는 세계에서의 완성을 축복한다; 이전까지 단 한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그런 힘으로 완성된 그것은 자연의 힘을 경험하며 스스로의 존재의 정수가 무엇인지를 깨닫는다.
나는 이 글이 논쟁의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하지만, 반대측의 의견을 한번 살펴보는 것이 내 입장을 잘 보여주기에 좋은 일이라는 생각은 하고 있다. 그런 '반대 의견'들 중 하나는, 예술에는 '마법적인 힘' 같은 건 없다고 말한다:

"예술은 모방(묘사)일 뿐이며, 진정한 창조가 아니다. 비록 그 '마법적인 순간'에 동시에 발생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엑스터시와 미메시스는 서로 상반되는 개념이다. 사실 미학적인 가치가 있는 것들은 돌고 도는 방식으로 계속해서 나타난다: 인간이 점점 더 그 '예술적인 것'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행동을 하고 직접적으로 연관된 태도를 가지게 될수록, 그 '예술적인 것'들은 일상생활과 인간관계의 당연한 일부가 되어간다."
- [Az Esztetikum Sajatossaga(The Peculiarity of Aesthetic Quality)]

이와 같은 관점은 단순히 한 시대의 기록으로써의 가치만을 가지고 있다. 위 관점은 예술을 자연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인간의 단순한 인형극 따위로, 인간이라는 또 다른 인형의 타락한 행동으로 치부해 버리기 때문이다. 저 관점의 화자가 만들어 놓은 '가짜 모순'이 어떤 것인지를 알아보려면 예술의 내용과 기능에 대한 정의가 필요하다. 가장 간단한 방법으로 해결책을 찾아 보도록 하자. 잘 알려진 바에 따르자면(Dr. Dezso Mosonyi, [A Zene Lelektana Uj Utakon(New Ways in Music Psychology)]) 음악의 원천은, 고통이다: 노래를 부른다는 행위는 고통을 발산한다는 행위의 모방이다. 이 정의를 따르자면 고대의 음악은 고통을 분출하는 과정을 변형기킨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예술의 탄생을 단순한 모방 및 재생산 따위로 단순하게 볼 수는 없는 것이다: 예술은 이 세계의 또 다른 정수를 만끽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그리고 그것을 꿰뚫어 보고, 이해하고, 인간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인간의 행위로써 존재하게 된다. 즉, 고대의, '세계가 인간을 지배하던' 시절의 음악의 탄생은 오늘날과는 정 반대가 되는 것이다. 오늘날, 바로 '인간이 세계를 지배하는' 시대, 인간이 질서를 부여하고, 행동을 하고, 세계는 그저 인간의 행동을 '감내하는' 시대 말이다.


http://www.youtube.com/watch?v=LGmIeAP89Vk

예술은 단순히 모방의 행동 정도로 치부해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닌, '정수'를 추출하고 표현할 수 있는 행동이며, 더 나아가 인간의, 인간 시스템의 정수를 창조할 수 있는 행위이기도 하다. 따라서 예술은 마법적인 행동들, 의식(rite)이나 춤과 같이 무의식의 에너지를 표출하며 인간의 본질을 표현하고 깨닫게 해 주는 그런 '예술적인' 행동들을 수반하게 된다. 이 '마법적인 의식'을 살펴보기 위해, Erwin Rohde의 "Psyche" 및 트리키아인의 디오니소스 찬양 의식에 대한 "묘사"를 예시로 들도록 하자. "절대주의자(suprematist)"의 위치에서 "관찰자"는 결코 삶의 본질과 연결될 수 없으며, Rohde, 이 '교양있는 신사양반' 또한 그렇게 찬양 의식을 순전히 짐승의, 야만스럽고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의식은 어두운 밤, 산 정상에서 횃불의 불안한 빛 아래 시작한다. 시끄러운 음악이, 천둥같은 심벌즈와 거대한 드럼의 질주가, 어두운 음색의 파이프가, 광기어린 화음이 터져나온다. …이런 야만적인 음악에 경도된 참가자들은 기이한 비명을 질러대며 춤을 추기 시작한다. 노래라고 부를 만한 것은 하나도 들리지 않으며, 춤은 참가자들을 거의 질식의 상태로 몰아넣는다. 이런 광기는 춤마저도 정상적인 춤이 아니게, 그러니까 파에아키아에서 호메로스의 시를 부르던 그리스인들의 춤 같은 느낌조차도 들지 않는 무아지경으로 만들어 버린다. 열에 들뜬 군중은 미친 것 같은 원형의 춤을 추며 언덕을 빠르게 내달린다. 광기어린 사람들의 대부분은 여성으로, 기력을 완전하게 소진하기 전까지는 계속해서 춤을 추는 사람들이다. 기이한 가면을 쓴 채로 … 또는 망토 위로 사슴 가죽을 뒤집어 쓴 채로, 그리고 대부분은 거기에 더해 사슴의 뿔을 머리에 쓴 채로. 그들의 머리카락은 사납게 흩날린다; 그들은 단검과 지팡이를 흔들어대며, 지팡이 속에는 창날이 숨겨져 있다. 즉 그들은 미쳐서 날뛰고 있으며, 마침내 이 격정이 한계치에 도달하고, 그들의 내면에 있는 "신성한 광기"에 의해 자신을 희생양이 될 짐승 위로 내던지게 된다 … 그리고는 제물을 잡아 찢어버리며, 자신의 이를 사용해 물어뜯고, 생생하게 피를 흘리는 그 고기를 게걸스럽게 먹어치운다."

이 구절은 Rohde가 이와 같은 마법적인 의식의 의미에 대해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보여 준다. 그 어떤 공동체라도, 공동체의 마법적 의식은 생존에 있어 필수적인 부분에 대해 구성원들이 확신을 가질 수 있게 해 주는 것을 목표로 한다 - 이 사실이야말로 마법적 의식을 이해하는 것의 핵심이다. 그리고 이 사실이야말로 Guyau가 예술에 있어서의 환희에 대해 말할 때 적용했던 것이다:
"새가 날개를 활짝 펴고 화살과 같이 바람을 가르며 날아갈때 어떤 기분일지를 생각해 보라, 말이 전속력으로 달릴 때(galloping)(저자주: 이탤릭은 내가 넣은 것이다) 그 등에 타고 있는 우리가 어떤 기분인지를 다시금 떠올려 보라, 아니면 물거품을 가르는 보트를 타고 있을 때, 왈츠의 환희를 느끼고 있을 때를. 이런 질주는 우리의 내면에 무한함의 감각을, 강렬한 갈망을, 활기에 가득 찬 야생의 삶을, 세분화된 삶에 대한 거부감을, 그 어떤 복잡함에서라도 탈피하여 같이 질주함으로써 우주에 흡수되기를 바라는 충동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http://www.youtube.com/watch?v=jXgGt5ElwAk

이제 우리의 관점을 설명하였으니, '예술적인 행동'의 정의에 대해 다루어 보자. 앞에서 우리가 말했던 것들에 비추어 보자면 예술적 행위는 3개의 소그룹으로 나눌 수 있다:
1. 이 그룹에 속하는 마법적-예술적 행위는 무의식을 아주 직접적이고 가장 활발한 방식으로 드러내며, 생물학적 오토마티즘이 스스로를 온전한, 하나의 총체로써 나타낼 수 있게 해 준다.
2. 이 그룹에 속하는 마법적-예술적 행위에 있어서 창조의 과정은 숨겨진, 즉 창조자에게 "생생하게 살아있지는 않은" 것이 된다. 이 그룹에 속하는 행위는 창조의 과정이 완성되자마자 발생한다; 그 후 발생하는 무의식 속의 변화는 자아 자체와 자아의 메커니즘에 영향을 미치며 그 중 일부를 조절하게 된다. 그리고, 무의식의 출현에 어느 정도는 일조한다.
3. 마지막으로 완전히 '미학적'인, 인공적인 예술이, 공식적이고, "정중한" 예술이 있다 - 이 예술은 당대의 관념을 지배하는 인공적인 편견을 만족시키기 위해, 한 시대의 사람들이 열망하는 취향을 맞추기 위해 주문되어지고 소비되어지는 것이다. 한 사회가 발전하게 되면 '사회화' 또한 당연하게도 점점 확장되며, 이는 다시 말해서 개인의 사생활은 점점 더 줄어든다는 것을, 인간의 위대함이 점점 시들어간다는 것을, 인간의 정신이 타락해져가고 사그라져간다는 것을, 개인의 존엄성과 독립성이 훼손되어 간다는 것을, 그리고 예술은 점점 더 모방에 가까워 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런 일들이 벌어지게 되면 예술은 오히려 삶을 묘사할 수 없게 되며, 대신 인공적인, 공장에서 억지로 만들어진 듯한 사물들과 과정들을 묘사하게 되어버린다; 이론들, 그리고 이 이론들의 천재들. 그리하여 예술은 보잘것없는 목표에 매달리며 살아가는 '길들여진' 인간을 다루는데 쓰이는 보조수단이 되어 인간의 '감정적 삶'을 시들어 죽어버리게 만든다.

자연계에서 오로지 가축과 인간만이 자신의 욕망과 목적을 '적절하게' 판단하여 스스로를 기만할 수 있으며, 나아가 스스로가 생물학적인 존재라는 사실의 근간마저도 위협할 수 있을 정도가 될 수 있다. 사회적/자연적 외부요인에 대항하여 자신의 생물학적/정신적 능력을 발휘해 보다 더 효율적이고, 완전하고, 포괄적인 적응과 행동양상을 만들어내 이를 굳게 다져 널리 퍼뜨리는 것은 '삶과 죽음'에 직결되는 문제이지만, 독립적, 자주적, 그리고 건강한 삶의 가능성은 전 세계에서 사라져가고 있는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흔히 인간 존재의 "주관적 영역"이라 불리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된다. Ortega y Gasset이 말했듯이, "역사란, 인류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을 찾아내기 위한 실험이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는 거대한 실험실과 같다." 그리고 이 말은 역을 취해도 성립한다: 정신적인 측면에서의 인류의 미래는 보다 더 새로운 '제 1 원칙'을, 공적 삶과 개인적 삶의 새로운 형태를 발견해낼 수 있느냐에, 그리고 새롭게 발견한 원칙을 얼마나 더 널리 퍼뜨리고 적용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제멋대로 끊임없이 확장하고 있는 비인간적인 사회화(socialization), 삶의 상품화(commercialization), 일상의 하찮음(pettiness)과 평범함(mediocracy)의 증가, 아무도 통제하지 않는 조작과 쓰레기같은 거짓 정보들의 범람은 대중음악을 점차 야성적으로,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더 과격하고 더 급진적인 영역으로, 그러니까 부활의 영역으로 나아가게 만드는(감상적인 댄스 음악, 그 후 비트닉 음악, 그리고 그 이후엔, 펑크) 원인이다. 아직 본능의 영역에서 스스로를 방어하고, 스스로의 삶을 방어하고, 자기 자신만의 삶을 살고자 하는 감각을 갖고 있을 수 있는 젊은 세대만이, 본연의 기능을 저버린채로 가짜의 역할을 수행하는 시스템의 배타적인 문화에 대한 반문화를 창조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반문화는, 문제 해결의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문제를 말하는 수준에서는 인류와 인류의 국가들이 오랜 시간동안 직면해 왔던 문제들의 근본 특성에 대해 말한다. 60년대의 비트닉 음악, 그리고 지금의 펑크 음악은 시스템을 조작하는 기계들에 의해 발생한 것이 아닌, 지하에서 스스로 자라나 올라온 문화이다. 이제 질문은 이 펑크 음악이 과연 옛 세대의 진정한 민속음악과 어떤 방식으로든 연결될 수 있는지, 연결되어 있다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이다.


http://www.youtube.com/watch?v=VH0jIdRZexo

Bela Bartok에 따르자면 (ibid. p. 3) 민속음악이란 "우리의 내면, 무의식 속에서 작동하는 자연의 힘이 자발적으로 흘러나와, 그전까지 자신이 배워 온 클리셰들에는 전혀 영향을 받지 않은 완전히 고유한 방식으로 자신의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와 같은 정의는 "선사시대"의 마법적 예술들과 놀라운 유사점을 가지고 있다:

"구석기 시대의 회화는 서양화의 역사에 있어 인상주의(impressionism) 이전까지의 '지적 놀음'과는 아무런 관련성따위 가지고 있지 않으며, 너무나도 직설적이고, 순수하며, 활력에 넘치는 시각적 표현이다. 그 고대의 그림들을 보고 있자면 굉장히 세밀한 부분묘사를, 현대의 인류라면 아주 복잡한 과정을 통해야만 발견해낼 수 있는 그런 묘사를 확인할 수 있다. 구석기 시대의 화가들은 그런 섬세한 묘사를 단순히 두 눈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알아채고 표현할 수 있었던 것이다."
Arnold Hauser, [A Muveszet es Irodalom Tarsadalomtortenete (Social History of Art)], Budapest, Gondolat Kiado, 1980

과연 오늘날에도 저 "자연의 힘" - 전 인류에 보편적으로 만연하는 그 힘이 여전히, 인류에 유효한 상태인가? 여기에 관해선 이론적인 논쟁보다는 경험적인 증거를 찾는 것에 주력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만약 그러한 보편적인 자연의 힘이 시간과 공간의 변화에 (적어도 어느 정도는)무관하다면, 그 힘의 예술적 현신들 또한 시간과 공간에 무관하게 동일한 특성을 갖고 있을 것이다. 과연 정말로 그러한지를 찾아보도록 하자!
펑크 공연이 절정에 이르면, 관중들과 밴드 사이에선 특유의 리드미컬하고 격렬한 함성이 터져나온다: Oj! Oj! (영어로는 Oi! Oi!) (역주: 영국의 하드코어 펑크의 한 축이었던 Oi! movement를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Vilmos Dioszegi의 연구를 참고했을때 우리는 이 "펑크 함성"이 형태, 기능, 그리고 의미에 있어 샤먼들이 주술의식에서 외쳤던 고함소리와 같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단어'야말로 모든 샤머니즘 주술에 있어 유일하게 일관된 요소이다. 이 '단어'를 통해, 샤머니즘 의식의 참여자들은 "정령"을 불러와 엑스터시와 무아지경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무언가에 완전히 사로잡히는 그 순간은 언제나 이와 같은 '단어'를 통해 불러와졌다. 사모예드 샤먼들은 다음과 같이 외쳤었다: Ou! Ou! 숲에 거주하던 네네츠족 또한 마찬가지이다: He! Hej! 툰드라에 거주하던 네네츠족 또한 그랬다: Hoj! Hoj! Hej! Sej! 터키인들도 그랬으며: Kaj! Kaî! 야쿠트족도 마찬가지였고: Hij! 그린란드의 에스키모 또한 그러했다: Hoi! Hoi!

언어학자들 및 언어사학자들의 의견을 따르자면 "h"음은 한편으로는 후두음으로써 "k"음과 관련이 깊은 음인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약한 음으로 가끔은 언어의 발달과정에서 생략되어 묵음이 되기도 하는 음이다. 이 "h"음은 헝가리어권에서는 아직 쓰이고 있다: Hej! Haj! Huj! Hij! Sej! Aj! 같은 감탄사로 매일같이 나오는 발음이다. 또한 헝가리의 '전쟁 함성'은 유럽 역사에서 잘 알려져 있는 것이다: Huj! Huj! Hajra! 또한 헝가리 Regos(저자주: 대충 번역해서 Bard 또는 Minstrel) 들이 계속해서 사용하는 후렴구는 바로 "Haj! Rego Rejtem"으로, 그 의미는 Dioszegi에 따르면 "Haj! is raving with rave" 이다. 즉, 펑크 공연에서의, 그 주술의식과도 같은 함성의 현장에서, 펑크는 이 '단어'를 스스로 재발견하였고, 옛날 샤머니즘의 믿음이 유라시아 전역에 퍼져 있던 시절의 샤머니즘 의식에서 그 '단어'가 울려퍼질 때와 같은 목적을 갖고 그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펑크 공연에서 무대 위 밴드와 무대 아래 날뛰는 관객들은 간혹 똑같은 레오파드 무늬의 옷이나 가죽옷 등을 입으며 얼굴에 그림을 그리거나 색을 칠하기도 하는데, 이는 샤머니즘 의식의 참여자들이 똑같은 동물 가죽을 걸치고 얼굴에 분장을 하는 것과 너무나도 비슷한 양상이다. 샤먼들은 인디언처럼 깃털장식을 머리에 쓰곤 하였으며, 오늘날의 펑크족들은 인디언의 머리 스타일, 흔히 말하는 모히칸 컷을 하고 다닌다. 이런 것들 말고도, 샤머니즘과 펑크는 의식 자체의 진정한 정수(essence) 또한 공유한다: 엑스터시로 향한다는 것. 두 경우 모두 엑스터시에 도달하기 위해 음악과 춤을, 극단적으로 리드미컬하며 강렬한 힘을 갖는 음악을 사용한다. 이 비슷한 특징들은 과학적인 연구의 결과가 아니라 그냥 자연스럽게, 본능적으로 발전된 것이며, 따라서 샤머니즘 의식이라는 2~3천년전의 활동들과 현재의 펑크는 동일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또한, 억압과 역사적 비극에 저항하고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파괴하는 힘인 소위 '민속 예술(folk art)'이 지금, 현대에서도, 주변의 자연환경과 완전히 일치하여 살아갔었던 고대와 같은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http://www.youtube.com/watch?v=uCr-WsjOuNog

고대 민속음악의 진정한 의미를 묘사해보기 위해, 나는 훈족의 음악에 대한 Laszlo Zolnay의 설명을 여기에 인용하고자 한다:

"훈족, 이 강경하고 호전적이었던 민족의 강렬한 리듬/음악은 중부 유럽에서부터 중국의 만리장성에까지 울려퍼졌었다. … 중국의 역사가들은 이 "욕정의", "음탕한" 음악이 중국 고유의 문화를 해치고 있다고 기록하곤 했다 …"
Laszlo Zolnay, [A Magyar Muzsika Evszazadaibol (Centuries of Hungarian Music)]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며 신에게 노래했던 옛 헝가리인들은, 짐승처럼, "늑대들처럼" 소리를 질러댔었다(역주: 몇몇 헝가리인들은 헝가리인의 선조가 훈족이라고 생각한다고 합니다.). 이 '리듬'과 '노래하는 방식' 모두를 고려해 보자면, 고대의 헝가리 민속음악과 현대의 펑크는 굉장히 유사한 음악이라는 것을 누구라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음악의 내용과 '단어'의 사용방식에서, 그리고 절정의 순간에서의 격렬한 운동, 복장, 헤어스타일, 생생하게 살아있는 음악과 엑스터시를 찾아 헤메인다는 점에서, 우리는 샤머니즘 민속음악과 펑크 사이의 유사성이 실존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헝가리 샤먼의 노래는 11세기가 되어서야 조금씩 순화되기 시작했다. "이교도 시절의 시가(poetry)는 평범한 민속음악으로 사라져 갔다." (Laszlo Zolnay, ibid.)

클래식 음악처럼, 견고하면서도 실제의 삶과는 상당히 동떨어져있는 '규칙'들(화성, 12음 기법 등)에 의존하는 음악은 '새로운 문화'를 창출할 능력이 없다. 새로운 문화는 새로운 세계관, 새로운 상상, 새로운 신화와 새로운 예술을 필요로 하며, 새로운 행동양식, 새로운 방법, 새로운 수단이 있어야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음악들은 청자에게 진정한 삶, 새로운 에너지, 자아와 자아에 대한 확신을 부여하지 못한다. 클래식 및 컨템포러리 음악은 관객으로부터(여기에 '참여자'는 없다. 오직 '연주자'와 '청자'만 있을 뿐) "사전 허가" 및 승낙을, 일종의 "성변화(역주: transubstantiation; 가톨릭의 성찬에서 빵과 포도주가 예수의 살과 피로 변하는 일, 그리고 그 현상에 대한 믿음)"를 요구한다. 물론, 여기서 "성변화"는 중세시대의 성스러운 개념이 아닌 어떤 너그럽고 유대감에 넘치는, 모호하고 불분명한 호의의 "공동체"를 의미하는 것이다. "민속적인",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껍데기만 민속적인" 음악은 상업적인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산업적 서비스에 불과하며, 그 이면에는 "민속음악"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깎아내리고 사람들을 점점 더 진정한 민속음악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좋은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여기에 우리는 사람들의 기분과 정신을 달래어 누그러뜨리는 팝 음악의 히트곡들 또한 생각해 볼 수 있으며, 이 모든 것을 고려해 오늘날 대부분의 음악들은 단순히 인간을 자신의 비극 앞에서 포기하도록 만들고, 그를 조작하여 좀 더 다루기 쉬운 개체로 만들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한때는 너무나도 강한 생명력으로 넘쳐나 인간이나 동물이나 그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음악"은 현대에 이르러 박물관에 전시된, 내장이 제거된 맘모스의 박제와도 같은 신세로 전락하였다. 점점 더 거대하게 열리고 있는 무한한 우주의 앞에서, 인간이 스스로를 아무런 가치도 없는 조그마한 점 하나로, 그저 원자 하나로 여기게 될 때, 그리고 오늘날의 '거짓 문화'에 복종적인 소비자가 되어버릴 때, 인간의 존엄성, 자존심, 숭고함은 말라 비틀어 죽어버리게 된다. 야생에서 짐승들과 함께 태어나 어떠한 언어도 배우지 않은 인간은 사회에서의 인간보다는 야생에서의 짐승에 가까운 마음을 갖게 된다. 인간은 인간으로써 태어난 존재였었고, 존재이다; 새로운 발견을 추구하는, 새로운 힘을 밝혀내고 이를 적용하고자 하는, 번영하고자 하는, 그리고 인간이 되고자 하는 노력과 투쟁은 언제나 끊임없이 진행되고 있어 왔다. 그것이야말로 과학과 예술이 해야만 하는 사명이며, 음악이 존재하는 이유이다.


http://www.youtube.com/watch?v=c5m_Ig-5jY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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